시청일기

우리 계장님은 상당히 잡학다식 하신 편이다. 문제는 남들이 이걸 알아주었으면 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잡담중에 삐끗하면 일장 강의를 들어야 하는 사태가 온다는 것이다.

오늘의 희생양은 A 주사님. 무슨 주제의 대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나?' 라는 물음에 적절한 답을 하지 못한 죄로 태초의 우주로부터 출발해 빅뱅이론을 거쳐 카오스, 블랙홀에 이르는 우주여행을 해야만 했다. 이분도 꽤 고집있으신 분이라 '사실 모든 물질은 팽창하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럼 내 책상이 점점 커진다는 말입니까!' 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바람에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버리고 지나가던 다른계 계장님까지 가세하여 코페르니쿠스, 유비쿼터스 등등의 화두가 오가는데, 흡사 네이버 뉴스 덧글창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였다;;

아무튼, A 주사님을 넉다운 시키고 기분이 좋아진 두 계장님. 연이은 잡담중에 시청 계약직 웹디자이너의 모니터가 사무실에서 유일한 CRT임을 발견하고 얘기를 나눈다. 그러던중 모니터가 어둡다는 불평을 듣자,

'아니 그럴수가! 이보시오 A 계장! 어서 이분의 모니터를 열라 좋은걸로 바꿔주시오!'

'콜! 서무는 당장 견적뽑고 예산을 편성하시오!'

라는 분위기로 접어들어,

'흠, 내가 디카로 찍은 사진을 열라 좋은 모니터로 보니까 화이트 노이즈가 싹 없어지더라고! 디자인하려면 그런게 있어야지, 한 29인치 PDP면 돼? 그거 한 400이면 사나?'

주) 화이트 노이즈 : 음향기기 등에서 무음 상태일때 치- 하고 들리는 잡음

'아니요.. 저는 21인치 고급형 CRT면 되는데..'

'그거는 화소수가 적어서 안돼 한 30인치는 돼야지'

참고로 이분의 주 업무는 320x100 정도의 배너 디자인

때마침 전산용품 취급하시는분이 등장했고 대략 이런 분위기면 코끼리도 사달라면 사주겠다 싶어서 옆에서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EIZO 19인치 블랙 CRT 한번 써보는게 소원이라 '에이조 에이조' 하고 거들었더니 에이조는 명성에 비해 이렇고 저런게 안좋으니 애플비전(오랫만에 들어본다..;;)같은게 차라리 낫다는 결론을 냈다.

그리하여 지금은 '쵝오 좋은걸로!' 라는 요건으로 견적 요청이 들어가 있는 상태. 사무실 한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맥킨토시에도 관심을 보여놨으니 분위기로 봐서는 당장 파워맥에 시네마 디스플레이라도 질러버릴 상황이다.

이 곳은 너무 재밌다;;

2006.03.17 덧 - 결국 시네마 디스플레이 23인치에 쿼드로가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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